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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아닌우현

아직은 바위의 이끼처럼 현실에 안주 중인 글쟁이 워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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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이야기 2018. 4. 24. 01:47

몰라도 되었던, 몰라야 했던 그들의 이야기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 10점
이소희 외 지음/여성문화이론연구소(여이연)


성판매 여성 안녕들 하십니까? 성판매 여성의 목소리

언제였을까, 지난 해 페이스북에서 성판매 여성이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 자신 주변의 이야기를 적어내려간 페이지 <성판매 여성 안녕들 하십니까?>를 접했다. 페친 중 누군가가 글 하나를 공유했을 것이다. 별 관심 없이 읽기 시작했으나 결국엔 페이지에 들어가 '좋아요'를 누르고 페이지를 구독하게 되었다. 글이 자주 올라오지 않았지만 SNS라는 매체에서 흔치 않게 긴 호흡으로, 담담하게,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날 것의 이야기를 담아 적어 내려간 글이 올라올 때면 빼놓지 않고 읽었다.

올해 초 텀블벅 페이지를 통해 책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했다. 사내 독서클럽에서 사람을 모아 공동 구매를 했다. 책은 목표치를 400%를 훌쩍 뛰어넘었고 지난 주쯤에야 책을 받아볼 수 있었다.


자주 나오는 이야기, 돈.

jtbc 드라마 <청춘시대>에서 성매매로 화려한 삶을 사는 인물로 나오는 강이나(류화영 역)성매매 여성을 집결지의 가난한 여성 또는 소위 스폰서를 등쳐먹는 '텐프로' 여성으로만 그릴 정도로 우리의 상상력은 빈약하다. 그들에게 저자는 '사이즈'가 되지 못하는 성판매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너무 옛날 얘기하는 거 아니야? 요즘 '언니'들은 안 그래. 오히려 남자를 골라서 만나고 실장(포주)도 맘대로 못 해."

어쩌다 성매매를 주제로 알고 지내는 남성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가 했던 말이었다. 나는 성매매 자체가 '성'을 사고 팔 수 있는 것으로 만듦과 함께 성매매 현장이 곧잘 폭력의 현장이 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동의하지 못했다. 우리가 TV에서 곧잘 접하는 '스폰서 얻는' 여성은 스폰서의 부를 업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온다. 나는 그런 사람이 예외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 나는 아는 게 없었으니까. 그게 예외라는 걸 힘주어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만남 한 번에 30-40만 원씩 낼 수 있고 여성에게 고가의 명품을 척척 안길 수 있는 남성이 다수겠는가. 그런 남성이 매우 소수일 텐데 그런 남성에게 '초이스' 되는 여성이라고 다수겠는가. 그에 비해 몸 말고는 팔 것이 없어서, 몸이라도 팔아야 하는 인생은 이노무 헬조선에 한 둘이겠는가.  

예외지만 대표처럼 표상되는 '쉽게 돈 버는' 성판매 여성을 향한 그의 분노는, 그가 다른 날 다른 맥락에서 "(재산이 없는 백수인) 나 같은 남자는 사람 취급 못 받아"라고 내뱉은 자조와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다들 쉽게 돈 벌고 싶어 하잖아요. 그래서 로또를 사고 건물주가 되길 바라고요. 이 사회에서 정말 쉽게 돈 버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건물을 생일 선물로 받는 어떤 사람들은 동경의 대상이 되면서 왜 유독 성판매자에게 이런 비난이 가해지고 쉽게 돈 벌고 있는 거 아닌지 스스로 검열해야 하는가.


팔리는 여성이 되려면, 보호받는 여성이 되려면

위의 남성과 말하면서야 나는 내가 성매매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걸 알았다. 알지 않1아도 되었으니까. 남의 일이었으니까. 나아가 알면, 아는 티를 내면 내게 불리하니까. '그런 거 모르고 착하게 사는' 여자인 게 여러 모로 편하니까. 그 세상 일을 읊어댔다가는 그 지식을 어디에서 얻었는지 의심 받을 테니까.

한 번은 그가 신촌 인근을 지나다 짧은 치마에 힐을 신은 여성이 지하 주점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역시!"라고 말했다. 그 짧은 치마가 홀복임이, 그 여성이 성판매 여성이거나 적어도 '도우미'(뭘 돕는 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여성임을 확신했다는 것이다. 

성판매 여성, 성착취 피해 여성에게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는 꽤나 전형적이고 고정적이다. 저자는 말한다. 성판매 여성이 팔리는 외모의 범위는 '사이즈'에 따라 다를지언정 매우 협소하다고. 그걸 벗어나면 일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자신의 개성 따윈 잊고 규범적인 여성상(호리호리한 몸매에 달라붙는 치마와 구두, 스타킹, 너무 진하지 않은 화장)의 용모를 기획/생산해야만 밥을 해결할 수 있다고. 

영화 '레 미제라블' 중 팡틴느여전히 성매매 현장은 몸 말고는 팔 것이 도저히 남아 있지 않은 소수자들이 모인다. 그들을 받아들여주는 '일터'는 그곳뿐이니.

피해 여성에게 갖다 대는 잣대 역시 딱 그만큼의 융통성을 갖고 있다. 비자발적으로 시작해야 했거나, 무슨 일인지 전혀 모르는 어리숙한 채로 당했거나, 아주 심각한 부채를 떠안았으나 도와줄 사람이 없거나. 제 힘으로 살아보겠다고 성판매를 시작한 사람, 남들이 스펙 쌓는 시간 동안 최저임금 알바를 하며 평생 고만고만한 비정규직 삶을 살고 싶지 않아 시간을 벌려고 한 사람은 '사회가 인정하는' 피해자 상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는 주변부로 밀려나는 사람들일 수록 성판매로 들어올 수 있다고 말하며, 그게 개인의 도덕성이나 노력의 문제인지 묻는다. 스펙이 화려한 이력서가 없이도, 주 5일 8시간씩 일할 수 없어도 그들에게 생활 가능한 돈을 주는 '일터'는 이 바닥이 아니면 잘 없다는 것이다.

댓글 써준 분들의 말대로 힘든 상황에 놓여있는 모든 사람이 성판매를 하는 건 아닙니다. 열악한 알바들을 하면서 버티고 자기 살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미담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사회에 아무 문제 없는 척, 노력이 부족해서 같은 위치에 서지 못하는 거라고 내가 노력하면 해결될 거라고, 그렇게 노력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이 체제를 수호하는 미담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애초에 출발선이 다른데 개인의 노력으로 그 모든 걸 상쇄하라고 하는 건 너무 이상해요. 너무 억울해. 그런 게 미담이 되는 사회는 너무 이상해.


사실 이 책에 나오는 화두는 이뿐이 아니다. 정상 가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 나라 복지 체계, 여성의 몸만이 아니라 여성의 규범까지 강요하는 손님들, 여성을 소유하고 공유함으로써 남성 연대를 만드는 손님들, 착취와 피해자로만 읽을 수 없는 실장과 성판매 여성의 관계, 성판매 여성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먹는 다양한 사람들 앞에서 피해를 주장할 수 없는 여성들. 다양한 변주를 관통하는 것은, 그 안에서 저자는 자신의 위치를 고민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그러려면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깊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 끝에는 이 책의 제목이 다시 나온다.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 이다. 이 한 문장 단어 하나 하나에 저자의 생각이 꾹꾹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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